차별와 역차별 사이에 있는 ‘여성 전용 공간’
강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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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9 18:37
여성도 불편한 공간? 폐지 요구도…男 소외감 유발해
‘낯선 남성’ 공포 때문에 안전 담보로 붙는 추가 비용
범죄 방지 위한 일시적 조치…배제된 ‘여성사’ 주목해야
백화점 이용시설, ‘꾸밈‧육아’ 노동에 젠더 인식 부재
“내 일 아니라서”…이리저리 외면 받고 있는 젠더 평등
투데이신문 김효인 조유빈 기자】 “거기는 ‘레이디존(Lady Zone)’이라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최근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한 김모(26‧남)씨는 마침 비어 있는 기구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불러세웠다. 보라색 조명이 깔리고 분홍색 테이프로 경계선이 쳐진 해당 공간 입구에는 ‘이곳은 여성 전용, 레이디존입니다. 남성 회원님은 머신이 비어 있더라도 이용을 삼가주세요’라는 문구가 쓰여있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에 김씨는 “굳이 레이디존을 만들어 성별을 구분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같은 돈을 내는 상황에서 여성에게만 따로 공간이 마련돼 있는 것을 보면 허탈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본래 여성 전용 공간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 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시작된 정책의 일종이었다. 하지만 기업에서 운영하는 여성 전용공간의 경우 여성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활동에서 비롯됐다. 최근 기업에서는 여성 전용 칵테일바‧사우나 등과 같은 여성만을 위한 공간과 관련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여성 전용 공간은 안심하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여성 소비자에게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같은 여성고객을 위한 서비스가 매출향상으로 이어지면서 기업들도 여성 전용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다.
다만 여성 전용 공간은 반대로 남성들에게는 차별적인 공간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리고 여성 전용 공간이라는 명목으로 여성들은 남녀가 같이 이용하는 공간보다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렇듯 기업에서 여성을 위한 공간이 여성의 조바심과 우려심을 이용했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여성들만이 이용하는 공간에서도 성차별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여성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가 상당수 설치돼 있지만 남자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마저 제대로 배치되지 않는 곳이 많은 실정이다. 이에 여성이 양육을 떠맡고 있다는 고정관념이 그대로 반영돼 남성권력적인 공간이자 성편향적인 공간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여성 화장실에서의 파우더룸 역시 여성에게만 한정된 꾸밈 노동의 반영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여성 전용 공간이 겉으로 볼 때에는 여성 보호와 우대, 배려적인 측면으로 보이겠지만 남녀 공간을 모두 통틀어봤을 때에는 그렇지 않다. 이렇듯 여성을 위한다는 공간은 여성이 보호받아야만 한다는 편견과 함께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성고정관념을 공고하게 만드는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성별과 공간에 대한 심층적 고민과 이를 반영한 공간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 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는 김모씨(26‧남)는 “아무래도 여성에게 특혜가 간다는 느낌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다”며 “성별에 따라 나누는 공간을 보면 아무래도 편향적으로 쏠리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에 역차별에 대한 얘기도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황모씨(25‧남) 또한 “여성 전용 시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성별에 따라 나뉜 시설들이 눈에 들어올 때면 불편한 마음이 든다”며 “남녀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은 현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늘리는 것만이 답은 아닌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여성 전용 공간이 범죄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그 실효성 문제가 꾸준히 지적받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박모씨(27‧여)는 “신체적인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굳이 성별에 따라 공간을 나눌 필요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여성의 안전보호와 관련해서도 괜한 편견을 만드는 것 같다. 여성 전용 공간의 장점을 잘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이모씨(45‧여)는 “오히려 (여성 전용 공간이) 범죄의 대상이 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서는 가급적이면 이용하지 않게 됐다”며 “오히려 안전 요원이나 CCTV를 더 늘려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다만 인천에 거주하는 강모씨(28‧여)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을 왜 비난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여성이 약자였던 과거가 있는 만큼 아직 사회적으로 배려를 받아야 되는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전용 공간 만들어진 배경은?…‘낯선 남성’ 피하는 여성들
“내가 공공장소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결국 내가 뭘 읽는지 궁금해하는 남자가 나타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내가 남자와 함께 공부하거나 글을 쓰기 위해 앉아있을 때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다” 레슬리 컨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152쪽 中
우리나라에서 여성 전용 공간이 화제의 중심에 떠오르게 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각 지자체별로 여성들의 안전보호를 증진시키고자 ‘여성 친화적 도시 만들기’ 사업을 추진한 것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여성 전용 공간은 이제 공공시설을 넘어 민간 사업장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이에 따라 일상생활과 관련된 공간뿐만이 아니라 오락적 성격을 띤 장소에서도 여성 전용 공간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마련한 호텔 1박과 파마자를 제공하는 이벤트는 여성만 응모가 가능했고, 서울 강남에는 여성 전용 당구장이 등장했다. ‘인스티즈’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성 전용 칵테일바를 추천하는 게시글과 함께 여성 전용 사우나에 다녀왔다는 후기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다만 가게와 상권마다 가격의 차이는 보이지만, 여성 전용이 들어가면 가격이 평균적으로 비싸져 가기 꺼려진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특히 여성 전용 원룸의 경우에는 월세가 일반 집보다 더 높았고, 여성 전용 택시 콜비도 기본요금보다 5000원가량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여성의 안전을 담보로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핑크택스’(Pink Tax) 논란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여성 전용 공간을 찾는 소비자들은 많다. 그렇다면 여성 소비자들은 왜 돈을 더 내서라도 여성 전용 공간을 찾거나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공간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에는 소비자가 찾아가게끔 욕망을 자극하는 ‘장소성’이 고려된다.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가 집필한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는 이러한 공간의 힘을 ‘공간력’이라고 정의했으며, 공간 자체의 힘으로 사람을 끌어당기고 머물게 하는 ‘인력(引力)’이 있다고 봤다.
이를 여성 전용 공간에 적용해보면, 여성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을 만듦으로써 여성 고객의 발길을 끈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이 같은 전략은 여성 고객의 권력, 혹은 구매력이 과거에 비해 규모가 커졌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로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여성 소비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업계의 경우 여성의 취향 등이 고려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에서 마련하는 여성 전용 공간은 여성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고자 한 것에 기인 되는데, 여성 고객들은 왜 남성이 배제된 공간을 추구하게 된 것일까.
후략
http://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4606
‘낯선 남성’ 공포 때문에 안전 담보로 붙는 추가 비용
범죄 방지 위한 일시적 조치…배제된 ‘여성사’ 주목해야
백화점 이용시설, ‘꾸밈‧육아’ 노동에 젠더 인식 부재
“내 일 아니라서”…이리저리 외면 받고 있는 젠더 평등
투데이신문 김효인 조유빈 기자】 “거기는 ‘레이디존(Lady Zone)’이라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최근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한 김모(26‧남)씨는 마침 비어 있는 기구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불러세웠다. 보라색 조명이 깔리고 분홍색 테이프로 경계선이 쳐진 해당 공간 입구에는 ‘이곳은 여성 전용, 레이디존입니다. 남성 회원님은 머신이 비어 있더라도 이용을 삼가주세요’라는 문구가 쓰여있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에 김씨는 “굳이 레이디존을 만들어 성별을 구분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같은 돈을 내는 상황에서 여성에게만 따로 공간이 마련돼 있는 것을 보면 허탈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본래 여성 전용 공간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 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시작된 정책의 일종이었다. 하지만 기업에서 운영하는 여성 전용공간의 경우 여성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활동에서 비롯됐다. 최근 기업에서는 여성 전용 칵테일바‧사우나 등과 같은 여성만을 위한 공간과 관련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여성 전용 공간은 안심하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여성 소비자에게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같은 여성고객을 위한 서비스가 매출향상으로 이어지면서 기업들도 여성 전용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다.
다만 여성 전용 공간은 반대로 남성들에게는 차별적인 공간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리고 여성 전용 공간이라는 명목으로 여성들은 남녀가 같이 이용하는 공간보다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렇듯 기업에서 여성을 위한 공간이 여성의 조바심과 우려심을 이용했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여성들만이 이용하는 공간에서도 성차별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여성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가 상당수 설치돼 있지만 남자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마저 제대로 배치되지 않는 곳이 많은 실정이다. 이에 여성이 양육을 떠맡고 있다는 고정관념이 그대로 반영돼 남성권력적인 공간이자 성편향적인 공간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여성 화장실에서의 파우더룸 역시 여성에게만 한정된 꾸밈 노동의 반영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여성 전용 공간이 겉으로 볼 때에는 여성 보호와 우대, 배려적인 측면으로 보이겠지만 남녀 공간을 모두 통틀어봤을 때에는 그렇지 않다. 이렇듯 여성을 위한다는 공간은 여성이 보호받아야만 한다는 편견과 함께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성고정관념을 공고하게 만드는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성별과 공간에 대한 심층적 고민과 이를 반영한 공간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 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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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에 거주하는 김모씨(26‧남)는 “아무래도 여성에게 특혜가 간다는 느낌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다”며 “성별에 따라 나누는 공간을 보면 아무래도 편향적으로 쏠리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에 역차별에 대한 얘기도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황모씨(25‧남) 또한 “여성 전용 시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성별에 따라 나뉜 시설들이 눈에 들어올 때면 불편한 마음이 든다”며 “남녀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은 현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늘리는 것만이 답은 아닌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여성 전용 공간이 범죄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그 실효성 문제가 꾸준히 지적받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박모씨(27‧여)는 “신체적인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굳이 성별에 따라 공간을 나눌 필요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여성의 안전보호와 관련해서도 괜한 편견을 만드는 것 같다. 여성 전용 공간의 장점을 잘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이모씨(45‧여)는 “오히려 (여성 전용 공간이) 범죄의 대상이 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서는 가급적이면 이용하지 않게 됐다”며 “오히려 안전 요원이나 CCTV를 더 늘려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다만 인천에 거주하는 강모씨(28‧여)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을 왜 비난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여성이 약자였던 과거가 있는 만큼 아직 사회적으로 배려를 받아야 되는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전용 공간 만들어진 배경은?…‘낯선 남성’ 피하는 여성들
“내가 공공장소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결국 내가 뭘 읽는지 궁금해하는 남자가 나타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내가 남자와 함께 공부하거나 글을 쓰기 위해 앉아있을 때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다” 레슬리 컨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152쪽 中
우리나라에서 여성 전용 공간이 화제의 중심에 떠오르게 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각 지자체별로 여성들의 안전보호를 증진시키고자 ‘여성 친화적 도시 만들기’ 사업을 추진한 것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여성 전용 공간은 이제 공공시설을 넘어 민간 사업장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이에 따라 일상생활과 관련된 공간뿐만이 아니라 오락적 성격을 띤 장소에서도 여성 전용 공간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마련한 호텔 1박과 파마자를 제공하는 이벤트는 여성만 응모가 가능했고, 서울 강남에는 여성 전용 당구장이 등장했다. ‘인스티즈’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성 전용 칵테일바를 추천하는 게시글과 함께 여성 전용 사우나에 다녀왔다는 후기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다만 가게와 상권마다 가격의 차이는 보이지만, 여성 전용이 들어가면 가격이 평균적으로 비싸져 가기 꺼려진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특히 여성 전용 원룸의 경우에는 월세가 일반 집보다 더 높았고, 여성 전용 택시 콜비도 기본요금보다 5000원가량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여성의 안전을 담보로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핑크택스’(Pink Tax) 논란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여성 전용 공간을 찾는 소비자들은 많다. 그렇다면 여성 소비자들은 왜 돈을 더 내서라도 여성 전용 공간을 찾거나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공간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에는 소비자가 찾아가게끔 욕망을 자극하는 ‘장소성’이 고려된다.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가 집필한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는 이러한 공간의 힘을 ‘공간력’이라고 정의했으며, 공간 자체의 힘으로 사람을 끌어당기고 머물게 하는 ‘인력(引力)’이 있다고 봤다.
이를 여성 전용 공간에 적용해보면, 여성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을 만듦으로써 여성 고객의 발길을 끈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이 같은 전략은 여성 고객의 권력, 혹은 구매력이 과거에 비해 규모가 커졌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로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여성 소비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업계의 경우 여성의 취향 등이 고려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에서 마련하는 여성 전용 공간은 여성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고자 한 것에 기인 되는데, 여성 고객들은 왜 남성이 배제된 공간을 추구하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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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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