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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 해외서도 인기
'조선구마사' 폐기로 우려 컸던 사극 시장에 활기
'미투'하고, 승은 거부하는 궁녀
'오징어게임' 보다 넷플릭스서 더 화제인 '연모'
해외 시장 달구는 K사극
SBS '펜트하우스'가 올 상반기 지상파의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궜다면, 올 하반기 최대 화제작은 MBC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이하 '옷소매')이다. '옷소매'는 15%(14.3%·27일 기준)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MBC 드라마가 주말 드라마를 제외하고 10%대 시청률을 기록하기는 '나쁜 형사'(2018) 이후 3년 만이다.
해외에서도 K사극이 인기다. 요즘 넷플릭스에선 '오징어게임' 보다 KBS 사극 '연모'가 더 화제다. '연모'는 13일부터 19일까지 일주일 동안 1,800만여 시간이 재생돼 같은 기간 '오징어게임'(1,500만여 시간)을 제치고 비영어권 드라마 세계 순위 3위에 올랐다. 3월 SBS '조선구마사'가 역사 왜곡 논란으로 단 2회 만에 폐기돼 사극 시장이 당분간 꽁꽁 얼어붙지 않겠느냐는 우려와 달리 '옷소매'와 '연모' 등 K사극이 세계 드라마 시장을 후끈 달구고 있는 것이다.
조선 22대 왕 정조가 한 궁녀를 사랑하는 이야기를 그린 '옷소매'는 사극의 '이단아'다. 궁녀인 성덕임(이세영)은 일과 사랑에 주도적이고, 그래서 이산(이준호) 즉 왕의 사랑을 '선택' 한다. "저 스스로를 잃을까 두렵습니다". 극에서 덕임은 이렇게 말하며 이산의 후궁 제안을 두 번이나 거절한다.
왕을 연모하지만 나 그리고 온전한 내 삶을 지키기 위해 왕의 승은을 밀어내는 궁녀라니. '옷소매'는 의빈 성씨가 정조의 승은을 두 차례 거절한 뒤 후궁이 된 역사에 살을 붙여 궁녀를 소신 있는 여성으로 일으켜 세운다. 드라마평론가이자 소설가인 박생강은 "덕임은 장금(이영애)을 연상케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더 당당하고 그래서 왕과 궁녀의 사랑은 수평적으로 묘사돼 이들의 로맨스가 더 부각된다"고 말했다.
궁녀는 왕의 정치적 동반자이기도 하다. 덕임은 암살 위기에 놓인 이산을 군사 암호가 적힌 '신호연'으로 위기를 알려 구해낸다. 앞서 드라마 '이산'(2007)에서 도화서에서 일한 성송연(한지민)이 이산(이서진)의 승은을 받아 의빈 성씨가 되는 과정을 그렸지만, '옷소매'가 새로운 드라마로 비치는 배경이다.
동명 소설 원작과 달리 드라마 제작진은 제조상궁 조씨(박지영)가 이끄는 궁녀들의 조직 '광한궁'의 이야기를 새로 썼다. 궁녀들이 궁에서 자신을 지킬 수 밖에 없는 사연을 설득력 있게 깔아 극에 긴장감을 준다. 성덕임은 왕에게 직언도 주저하지 않는다. "겸사서가 늘 궁녀를 희롱하며 정보를 얻는 것을 저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현대판 '미투'다. 기존 TV 사극에선 쉬 볼 수 없던 궁녀의 모습이다. '옷소매' 제작을 총괄하는 김호영 MBC 책임프로듀서는 "원작을 드라마로 만들 때 여성 인물들을 좀 더 주도적으로 그려 시대의 흐름과 함께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옷소매'의 광한궁을 통한 궁녀들의 왕권에 대한 도전은 허구고, 그 궁녀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영·정조 왕권을 부정한다. 그런데도 '옷소매'가 1987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택한 JTBC '설강화'와 달리 조선 왕조 폄하 등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리지 않은 건 피해자에 서사를 줘 그 시대의 모순을 들추기 때문이다. 왕은 궁녀를 사랑했지만, 과연 궁녀는 왕을 사랑했을까. 궁녀는 왕의 소유물이었고, 수많은 궁녀들의 욕망은 철저히 부정 당했다. 궁녀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여성 서사가 요즘 시청자의 지지를 받는 이유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영·정조 시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옷소매'가 극적 상상력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했다"며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준 것도 좋지만, '조선구마사' 사태 이후 사극 제작의 전환점이 됐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MBC는 원작 소설의 판권을 산 뒤 2019년부터 2년여 동안 드라마 제작을 추진했다.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옷소매'는 방송되기까지 가시밭길을 걸었다. 정통 사극을 부담스러워하는 방송가 분위기 탓에 배우 캐스팅은 난항을 겪었다. 애초 올 1월 방송될 예정이었지만, 편성은 10개월 뒤인 11월로 미뤄졌다. 준호가 3월 제대 후 이 작품을 선택하면서 드라마 제작에 불이 붙었고, 5월에서야 촬영이 시작됐다.
인도네시아에 사는 데신타 아닌사씨는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온 '옷소매'의 열혈 시청자다. 아닌사씨는 "왕과 후궁의 관계뿐 아니라 궁궐에서의 삶과 그 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에 대한 얘기가 흥미로웠다"며 "영상미가 훌륭해 드라마를 보며 꼭 그 시대에 들어간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닌사씨는 정조와 궁녀의 신분을 뛰어넘는 절절한 조선시대 세기의 사랑에 푹 빠져 유튜브에서 두 사람의 실제 역사를 다룬 영어자막이 달린 영상들을 찾아봤다. 정조가 의빈 성씨가 죽자 크게 상심해 후궁의 묘지명에 '사랑한다' 등의 문구를 남겼고, 왕이 사랑한다고 언급한 유일한 후궁이란 내용이었다고 한다. 정조가 의빈 성씨와 사랑에 빠진 계기를 직접 묘비에 새긴 이 절절한 러브레터는 요즘 안팎으로 화제다. 이준호는 무심한 듯 아련하게, 이세영은 여리면서도 강단 있게 '밀당'을 하며 로맨스에 불을 붙인다. 인도네시아에 사는 앙기 씨는 "여태 궁녀의 이야기를 펼친 역사 드라마를 본 건 '옷소매'가 처음"이라며 "한국 사극을 처음 봤는데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고, 모르던 한국의 옛 문화를 구체적으로 알게 돼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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