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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규 0   0
모자 방해하다










































미국 사람들이 뿌듯하게 생각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다. 그런데 나는 엉뚱한 일이 궁금하다. 배의 국적이 스페인이 아니었다면 일이 어떻게 풀렸을까? 당시 스페인과 미국의 사이는 지금 러시아와 미국보다 고약했다. 이 무렵 미국 땅에 살던 흑인 노예들은 자유를 위해 미국의 백인과 싸웠다. 1831년에 냇 터너가, 1859년에 존 브라운이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목숨을 잃었다. 두 사건 다 이 칼럼에서 다룬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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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은 서울 도착 후 한국주교회의 본부를 방문하고 주교단 전체와 만났다. 방문 기념 서명을 부탁하려고 가로세로 40㎝ 정도의 두꺼운 서명판을 준비하여 드렸다. 교종께 서명판을 돌려받았는데 서명이 안 보였다. 제대로 의사 전달이 안 되었나 싶어 서명을 해주시라고 다시 부탁드렸다. 교종은 잘 보라고 했다. 서명판을 다시 살펴보니 아래쪽에 깨알 같은 작은 글씨로 “프란치스코”라고 쓰여 있었다. 놀라서 다른 주교들에게 그 서명판을 보이자 모두 “와∼”하고 감동과 경탄의 환호가 터졌다. 나는 이 깨알 같은 작은 글씨의 서명을 보며 미국의 어느 대통령 서명이 떠올랐다. 그 대통령은 자신이 새롭게 서명한 행정명령서에 몇미터 밖에서도 알 수 있는 굵고 큰 글씨로 서명하고 자랑스럽게 카메라 기자들에게 과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프란치스코 교종을 마음으로부터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런 분에게 여전히 교황이라는 제왕적 칭호를 습관적으로 붙이는 것은 역사를 올바로 성찰하지 않고 프란치스코 그분의 인품과 삶의 행적을 무시하고 욕되게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가톨릭교회는 고대에서부터 베드로의 후계자에게 아버지라는 존경의 뜻을 담아 대대로 파파라고 불렀다. 가톨릭 신앙이 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한자 문화권에서는 교종, 교황, 법왕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지금도 한국주교회의에서는 교종과 교황 둘 다 공식 직함으로 채택하고 있다. 교종(敎宗)은 교회의 으뜸이라는 의미이고 교황(敎皇)은 교회의 최고지도자, 통치자라는 뜻이다. 가톨릭교회가 아시아에 복음 전파를 시작하던 16세기,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은 세계의 종교적 지도자일 뿐 아니라 방대한 영토를 보유한 제왕이었고 정치적으로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 사람들이 교황이라는 어휘를 사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중국의 영향으로 교종과 교황이 함께 쓰였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교황이라는 용어가 고착되었다. 일본에서는 자신들의 왕을 천황이라 부르는 것이 관례였고, 로마 교황을 가리킬 때는 법왕(法王)이라는 용어를 썼다. 일본의 사회 관행과는 달리 일본의 가톨릭교회에서는 천황과 동급의 ‘황’을 선호하고 메이지시대 이후 지금까지 교황으로 불러왔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국 교회도 ‘교황’에 익숙해졌다.
오히려
[나는 역사다] 아미스타드호의 선상봉기 노예 아미스타드는 스페인어로 ‘우정’이라는 뜻이다. 19세기 스페인 국적의 배 이름이기도 했다. 배는 1839년에 쿠바를 떠났다. 피부가 검은 사람이 쉰명 넘게 타고 있었다. 인신매매 당해 노예로 팔려온 사람들이다. 사슬에 묶여 배 밑창에 갇힌 채 앞일을 두려워했다. “너희를 죽이고 요리해 먹을 거란다.” 요리사는 이들을 놀리기까지 했다. 마침내 이 사람들은 들고일어났다. 백인 선장을 죽이고 배를 빼앗았다(요리사도 죽였다). 아미스타드호의 선상 반란, 7월2일 무렵의 일이다.
그야말로
“우리 나라 사람으로 양자강 이남을 직접 본 사람이 근래에 없었는데, 그대만이 두루 보았으니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소?” 최부가 귀국길에 요동에서 마주친 조선의 사신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바다에서 길을 잃고 저승 문턱까지 다녀온 불운과 시련이 행운으로 몸을 바꾸는 장면이다. 최부 역시 여정의 어느 지점부터는 자신의 표류와 의도치 않은 유람이 지닌 가치를 깨닫고 착실히 메모를 해 두었던 듯싶다. 1488년 윤정월 3일(이하 음력) 일행 42명과 함께 제주를 떠나서부터 압록강을 건넌 6월4일까지 매일의 날씨와 상황을 세세하게 정리하기란 빼어난 기억력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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