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친고죄 폐지의 의미
강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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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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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범죄가 친고죄였던 이유는 무엇보다 성폭력이 정조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이예요. 정조를 보호하자는 말이 마치 여성(피해자)을 보호하자는 말처럼 사용된거죠. 여러모로 독소조항들이 많았습니다. 공소시효와 별도의 고소기간이 1년 이내라고 주어져서 실제로 고소를 아주 어렵게 했던 게 대표적이죠. 당연히 폐지되어야 할 조항이었습니다.
2. 그런데 친고죄 존속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갑자기 정조와 같은 성차별적 관념에 대한 문제는 쏙 빼버리고 성범죄 친고죄를 유지해야하는 이유를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인지수사가 이루어질 경우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과 사생활 침해 등 피해가 더 가중되는 부작용으로부터 보호되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냅니다. 이건 완전 뻥이었어요.
3. 실제로는 친고죄 때문에 사생활을 비롯한 피해자 권리는 더 많이 침해되었습니다. 비근한 예로 친고죄는 피해 당사자가 고소를 취하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하여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끝없이 종용하는 유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게 재판에서는 어떻게 악용되었냐면, 가해자 측 변호인들 1심 재판 때 피해자의 사생활을 최대한 털어서 멘탈을 나가게 한다음 고소취하를 하도록 하는게 필승전략으로 통할 정도였습니다. (사건지원과정에서 가장 속상했던 순간이기도 했었습니다.)
4. 그러니까 핵심은 이겁니다. 피해자 권리가 존중되는 방향인가. 어느 편이 더 피해자를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으로서 존중하는 방법인가. 이게 '기준'이라는거죠. 친고죄 폐지는 성폭력 문제를 개인간의 다툼이 아니라 성폭력을 사회적인 문제로 바라보자는 접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의사에만 기대지 말고 동료시민들이 문제해결을 함께 해나가야할 책임을 함께 지자는 의미이기도 했지요.
5. 그러니 친고죄가 폐지되었으니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고소할 수 있고 경찰에서 인지 수사를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중략] 어떤 경우에 친고죄 폐지되었으니 수사하거나 고발하라고 할 수 있냐면, '피해자가 나설 수 없는 상황'일 때 그렇습니다. 피해자의 의사인지 아니면 나서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을 때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컨대 목격자가 신고했는데 피해자는 아무 일이 아니라는 경우, 그게 어떤 다른 위력에 의해서는 아니었는지, 조사를 해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네. 여러분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다른 사례가 있지요?)
6. 당사자의 의견에 '반해서'가 아니라 당사자가 '자유로운 의사표명을 하기 어렵거나 본인의 곤란한 사정으로 문제해결을 원치 않는 특수한 사정이 있는가 살피자'는 얘기입니다. 가정폭력 신고를 받은 경찰이 가서 피해자가 괜찮다고 실수라고 하고 가해자와 함께 현관에 있는 경우 등을 상상해보시라는 겁니다.
7. 애초에 사법절차가 아닌 형태의 다른 공적인 기구를 통한 해결을 하고자 하는 피해자의 멱살을 잡고 경찰서로 가자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건 친고죄 폐지 여부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피해자가 사법절차보다 조직/기관/단체 내 해결을 더 신뢰하거나/바란다면 이런 해결을 시도하고, 가능하지 않으면 사법절차로 가면 됩니다. 사법절차보다 나은 방식을 우리가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 해서 그걸 유일한 방식으로 만드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뭐가 더 나은 방식일지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시죠.
8. 구제절차를 다변화하여 문제해결 능력을 전반적으로 키워가는게 낫습니다. 그게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해외의 성희롱/성추행 구제절차도 조직/기관 내 해결, 인권위나 (독일의 경우) 노동법원 등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사법절차에만 모든 것을 맡겨두는게 오히려 무책임한 일이라는 말이고, 사법절차는 최후의 방편으로 두는 편이 낫다는 말입니다. 학내 인권기구에 성폭력 사건 조사의뢰를 하고 절차가 진행중인데 갑자기 제3자가 형사고발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하나도 말이 안되잖아요. 애초에 친고죄 폐지 관련 이슈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는 말입니다.
출처: 권김현영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100000810626090/posts/4388958224474488/?d=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