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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유럽의 극우 보수세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찬양했다. 2022년 9월25일 이탈리아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연합의 파트너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우파연합의 또 다른 파트너인 마테오 살비니는 푸틴을 “지구상에 현존하는 최고의 정치인”으로 치켜세웠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푸틴을 “천재”라고 찬양했다.
현존하는 최고의 정치인… 천재…
푸틴의 인기는 유럽의 보수 동네인 동유럽에서는 지금도 건재하다. 2022년 4월 집권 10년 만에 5년 임기를 추가로 확보한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푸틴의 ‘러시아 세계’는 우리 민족주의자들이 ‘대(大)세르비아’라고 부르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달 총선에서 네 번째 연임에 성공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러시아산 가스 수입 금지에 동참하지 않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무기의 자국 영토 통과를 불허했다. 오르반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기독교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국제주의 좌파의 괴뢰”라고 비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모든 유럽 국가의 지도자들이 푸틴을 비난하고 경제제재에 동참하지만 이처럼 온도차는 있다. 영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극적이지만, 극우 보수주의 색채가 짙은 이탈리아·헝가리 등은 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이다. 심지어 온갖 음모 이론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는 미국을 비난하고 푸틴을 지지하는 대중운동이 활발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고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끊겨 추운 겨울이 계속된다면 유럽의 극우 지도자들이 전쟁 중지와 푸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관련기사] ‘신 나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유럽의 극우 지도자들과 푸틴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이들은 극우에 기반한 전통적인 보수 가치를 절대시한다. 푸틴은 소련 붕괴 이전까지 공산주의자였지만 집권 이후 극우 보수로 돌아섰다. 그는 “러시아혁명은 러시아 역사에서의 일탈”이며 “러시아는 무리한 서구화로 거대한 비극을 겪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정교 정신을 바탕으로 러시아를 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교에 바탕을 둔 제정러시아의 차르 체제가 푸틴이 꿈꾸는 이상형의 정치체제인데, 이는 유럽의 극우 보수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가족과 종교에 바탕을 둔 신정 체제를 꿈꾸며, 민주적인 다문화 질서를 부정한다. 이것은 인류가 두 차례 세계대전을 극복하며 세운 근대성에 대한 도전이라 볼 수 있다.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푸틴의 우크라이나
둘째, 푸틴과 그 친구들은 인종을 가장 소중하게 지켜야 할 개념으로 생각하는 파시스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푸틴의 연설에는 러시아 민족주의 개념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른다. 푸틴은 돈바스와 헤르손주의 합병 조약에 서명하면서 제정러시아 시절 극우주의자 이반 일린의 어록을 인용하는데, 그 짧은 문장에 ‘러시아’라는 단어가 무려 아홉 번 나온다. 히틀러가 같은 독일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오스트리아를 합병 대상으로 간주하고 침략한 것처럼, 푸틴은 같은 슬라브 민족이라는 이유로 우크라이나를 합병하기 위해 침략했다.
푸틴의 친구들도 인종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간주한다. 그들은 이탈리아만을 위한 이탈리아, 프랑스만을 위한 프랑스, 세르비아와 헝가리의 인종적 순수성이 가장 중요하며, 다른 인종은 지배와 배척 대상이다. 그들 눈에, 인종적 이유로 침략전쟁을 벌인 푸틴은 존경받아야 할 모범이다.
셋째, 푸틴과 그 친구들은 반미주의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동성애와 물질주의, 탐욕과 분열로 상징되는 사탄의 세계인 서구를 대변하며, 거룩한 러시아는 기독교의 마지막 요새’라고 주장한다. 푸틴의 친구들도 이에 동조한다. 미국은 절대악이며 자유주의 사상을 유포하고 동성애, 낙태, 마약 등의 범죄를 퍼뜨린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일부 반미주의자는 일종의 진영 논리에 빠져 우크라이나 전쟁을 본다. 이들은 음모론과 근거 없는 정보로 러시아의 만행을 정당화하고 현실을 왜곡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 사주한 일종의 대리전쟁이며, 러시아는 미국과 대결하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만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다.
푸틴과 그 친구들이 발호한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위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오랜 경기침체를 겪었으며, 세르비아와 헝가리는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매우 높다. 푸틴이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을 끊은 것은 경제위기를 조장해 친구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극우 파시스트의 부각을 경제만으로 다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태생적으로 약한 인간은 절대권력이나 신앙에 의지해 안도감을 느끼며, 빵 한 조각이라도 계속 받아먹을 수 있다면 불의에 눈감을 수 있다.
그렇지만 파시스트 체제는 지속 불가능하다. 인종주의나 민족주의 광풍을 불러일으키며 권력을 잡은 파시스트는 인종 안에서도 차별을 공공연히 자행한다. ‘현대판 차르’ 푸틴은 봉토 대신 경제적 특권을 올리가르히(과두재벌)에 주고 그들의 충성을 바탕으로 나라를 지배한다. 탐욕에 눈먼 특권계급은 나중에는 빵 한 조각도 뺏으려 든다. 러시아에서 ‘우리’(Mы, 특권계층)와 ‘그들’(Oни, 일반 민중)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시진핑과 김정은도 푸틴의 친구들
푸틴의 친구들은 유럽에만 있지 않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푸틴의 친구들이다. 중국과 북한도 공산주의를 버린 지 오래다. 두 나라의 공산당은 ‘분배’와 ‘평등’이라는 이념보다는 전통적 가치관(공자, 가부장)과 인종적 우월주의, 그리고 외부의 적인 반미를 내세워 통치를 정당화한다.
중국은 반중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위구르 민족을 자신의 땅에서 추방했다. 시진핑이 추진한 ‘전랑(늑대 전사) 외교’는 상대국과의 대립도 불사하며 중국의 가치를 강요하는 일종의 파시즘이다. 북한은 중국이 푸틴 지지를 주저하는 사이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독립을 승인한 유일한 나라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