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수 사실 갈다
임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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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0 12:35
껌 걱정되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은 서울 도착 후 한국주교회의 본부를 방문하고 주교단 전체와 만났다. 방문 기념 서명을 부탁하려고 가로세로 40㎝ 정도의 두꺼운 서명판을 준비하여 드렸다. 교종께 서명판을 돌려받았는데 서명이 안 보였다. 제대로 의사 전달이 안 되었나 싶어 서명을 해주시라고 다시 부탁드렸다. 교종은 잘 보라고 했다. 서명판을 다시 살펴보니 아래쪽에 깨알 같은 작은 글씨로 “프란치스코”라고 쓰여 있었다. 놀라서 다른 주교들에게 그 서명판을 보이자 모두 “와∼”하고 감동과 경탄의 환호가 터졌다. 나는 이 깨알 같은 작은 글씨의 서명을 보며 미국의 어느 대통령 서명이 떠올랐다. 그 대통령은 자신이 새롭게 서명한 행정명령서에 몇미터 밖에서도 알 수 있는 굵고 큰 글씨로 서명하고 자랑스럽게 카메라 기자들에게 과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프란치스코 교종을 마음으로부터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런 분에게 여전히 교황이라는 제왕적 칭호를 습관적으로 붙이는 것은 역사를 올바로 성찰하지 않고 프란치스코 그분의 인품과 삶의 행적을 무시하고 욕되게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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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표류란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고 물결 따라 떠돌다가 이르게 되는 뜻밖의 장소와 그곳에서 접한 풍물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매력적인 이야기를 낳았다. <로빈슨 크루소>와 <15 소년 표류기> 유의 표류담 또는 <걸리버 여행기>나 <유토피아> 같은 알레고리적 여행기가 주는 매력의 바탕에는 우리 안의 방랑 본능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내가 표류한 때는 풍파가 험악한 때로, 해상의 하늘이 흙비로 인하여 날마다 흐렸다. 돛과 돛대, 배를 매는 줄과 노가 꺾이거나 없어졌으며, 기갈로 인하여 열흘 동안이나 크게 고생했는데, 하루 사이에도 물에 빠져 낭패를 볼 조짐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15세기 조선 관리 최부는 추쇄경차관으로 부임했던 제주에서 부친상 소식을 듣고 급하게 배를 띄웠다가 풍랑을 만나 바다를 떠돌게 됐다. 13일 동안 표류하며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던 최부 일행은 가까스로 중국 남동부 해안에 상륙했고 그곳에서부터 항저우와 양저우, 톈진, 베이징을 거치며 136일 동안 중국 대륙을 종단한 끝에 의주를 통해 조선으로 돌아왔다. 귀국한 그가 성종의 지시로 청파역에 머물며 기록해 바친 일기가 <표해록>이다.
모조리
마리아는 올해 초 TV조선 ‘미스트롯2’에 출연해 12위에 오르며 인기를 얻었다. 특히 한국인보다 더 또렷한 한국어 발음과 섬세한 감정 표현이 눈길을 끌었다. 이후 그는 정식으로 소속사와 계약도 맺고 트로트 가수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최근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그는 “할아버지께서는 전쟁 당시 폐허가 된 상황을 안타까워하셨지만 한국 사람이나 문화를 좋아하셨다”며 “한국 사람들이 제 할아버지의 참전 사실에 이렇게 감사를 표할 줄 몰랐다. 손녀로서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꼼짝
6~72시간 잠복기가 있고, 복통, 설사, 열이 있다.
미국 사람들이 뿌듯하게 생각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다. 그런데 나는 엉뚱한 일이 궁금하다. 배의 국적이 스페인이 아니었다면 일이 어떻게 풀렸을까? 당시 스페인과 미국의 사이는 지금 러시아와 미국보다 고약했다. 이 무렵 미국 땅에 살던 흑인 노예들은 자유를 위해 미국의 백인과 싸웠다. 1831년에 냇 터너가, 1859년에 존 브라운이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목숨을 잃었다. 두 사건 다 이 칼럼에서 다룬 적 있다.
싹
여행의 본질은 낯선 것과의 만남에 있다. 기대했던 풍광을 접하는 기쁨도 크겠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과 맞닥뜨릴 때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계획했던 대로 순조롭게 진행된 여행보다 어긋나고 실패한 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 이치가 거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