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게시물 없애줍니다”…‘디지털 장의사’ 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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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보복성 포르노·몰카 범죄’가 만든 신종 직업


대학생 ㄱ씨는 최근 부모의 뜻에 따라 남자친구와 헤어지려고 했다. 그러자 ㄱ씨 남자친구는 그간 데이트하며 찍었던 ㄱ씨의 알몸 사진으로 ㄱ씨를 협박하며 더 수위가 높은 포즈의 사진을 요구했다. 얼마 후 ㄱ씨 몸의 은밀한 부위까지 찍힌 사진들은 커뮤니티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올라갔다. ㄱ씨 남자친구는 일베 회원이었다.

이후 ㄱ씨의 알몸 사진과 성관계 동영상은 음란물 사이트로 퍼날라졌다. ㄱ씨 남자친구는 휴대전화로 문제의 사진을 ㄱ씨 아버지에게까지 보냈다. ㄱ씨는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보복성 포르노)’의 피해자다.

ㄱ씨와 그의 아버지는 결국 ‘디지털 장의사’로 불리는 온라인 기록 삭제업체를 찾았다. ㄱ씨 동의없이 확산된 성관계 등의 동영상이 어디까지 유포됐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의뢰인의 위임을 받아 글과 사진, 동영상 등 각종 게시물을 대신 지워주는 일을 한다. 그들은 국내외 사이트를 뒤져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게시물 비공개 요청을 한다. 디지털 장의사는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 3월 발표한 ‘5년 내 부상할 신직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국내에는 15개 디지털 장의사 업체가 성업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벤지 포르노나 몰래카메라(몰카) 유포 피해자들이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23일 국내 1호 디지털 장의사 업체인 산타크루즈컴퍼니 홈페이지에서는 ‘동영상 삭제 비용 문의’ ‘유포 동영상 삭제 신청’ ‘과거를 지우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해당 업체 김호진 대표는 “지난해부터 몰카 영상이나 리벤지 포르노 삭제 의뢰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수된 개인의 성행위 동영상 삭제 민원은 3636건으로 2014년 1404건에 비해 2.4배나 증가했다.

디지털삭제업체 등에 따르면 딸이 과거에 찍은 사진과 글 때문에 자살한 사실을 뒤늦게 안 아버지가 죽은 딸의 과거 기록을 삭제해달라고 요구한 경우가 있다. 한 20대 남성은 성매매 여성과 관계를 맺는 장면을 몰래 촬영했다가 휴대전화를 분실하면서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돼 곤혹을 치른 후 삭제를 의뢰했다. 또 다른 한 여성은 음란 동영상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지 않지만 특정 신체부위가 자신의 모습이라며 삭제업체를 찾았다. 김 대표는 “음란물 속 얼굴이 공개돼 이민을 갔지만 현지 한인들 사이에서도 입방아에 올라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다”며 “급한 불을 끄려면 과거 기록을 지우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아직도 리벤지 포르노나 몰카 유포를 범죄로 인식하는 경향이 낮다. 경찰청에 따르면 휴대전화 등을 이용한 몰카 범죄 적발 건수는 2010년 1134건에서 지난해 7623건으로 5년간 7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행법상 스스로 신체 부위나 사생활을 찍은 촬영물을 제3자가 동의 없이 유포해도 명예훼손죄만 적용될 뿐 성폭력 범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제3자가 동의 없이 유포하면 성범죄로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의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개정안을 지난 13일 발의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자극적인 영상으로 클릭수가 오르면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인터넷 시장이 형성돼 있다”며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선 단속을 철저히 하고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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